빵을 굽는 사람들
츙주의 박상옥 시인이 시집 『밀밭의 어린 왕자』를 발간했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나는 시를 읽기보다 느끼는 사람이다.
그녀의 시는 따뜻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지구는 생명이 꽃피는 빵들의 마을/ 이웃이며 형제는 서로 빵이 된다./
지구엔/ 사람을 이기는 사람/ 사막을 이기는 사람/ 전쟁에 승리하는 사람은 있어도/
허기로 가득한/ 빵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 이쁘다/ 배꼽을 드러낸 사람들
– 「배꼽」 전문

갓 구운 빵 같은 생의 온기가 마음을 덥힌다.
세상은 경쟁과 타인을 밟고 올라서는 것을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의 빵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나누는 것이 진정한 생의 승리다.
(박상옥 시집 ‘밀밭의 어린 왕자’, 찬샘, 2024)
1.
사람들은 모르지 제 속에 빵 하나가 매일 부푸는 것을/ 누군가를 만날 때 다정함이 건너가는 것을/ 이러저러한 일이 부풀어 오르며/ 향기롭고 구수하게 하루가 익는 걸 모르지/
너의 오지에 깃대를 꽂는 평화/ 드디어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읽는다면/ 빵 굽는 어린왕자를 알겠지
2.
엄마, 세상에서 힘이 센 단어가 빵이란 걸/ 누구나 알까요./ 숨 쉬는 공기가 빵빵 부풀지 않으면/ 빵에 바람이나 비나 천등이 스미지 않으면/ 너와 나 우리의 존대도 없었다는 걸,/ 누구나 알까요
– 「제빵일기」 전문
나를 오래 붙들어 맨 ‘제빵일기’다.
시인의 어린왕자는 ‘조금 늦게 시작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정상이라고 부르는 빠릿빠릿함에 술수가 있다면 ‘느린 이’의 무기는 정직이다.
아비는 자식이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어미는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마음도 날씨 따라 흐리고, 개이고, 퍼붓던 날/ 첫 번째 콤바인이 실패하고 돌아간 뒤/ 다시 온 콤바인을 맞아 수확하는데/ 이거, 기계 임대료 안 나와요./ 밭이 질고 경사라 더 못해요./
두 번째 콤바인도 가버린 후,/ 외국인 노동자 데려와/ 청동칼 사용하던 수렵인처럼 밀을 베는데/ 시간 맞춰 번역기를 들이대더니 가버린다./ 땅의 주인은 외국인 아니라지만,/ 반월형 석도보다 좋은 21세기 낫이라 좋았건만/ 조상은 이보다 못한 낫으로 후손 먹여 살렸건만/ 오토카니 밀밭의 어린왕자를 낮달이 품는다.
– 「밀밭의 어린왕자」 전문
이 시집의 표제 시를 읽다가 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직접 경작한 밀밭에서 수확한 밀로 빵을 만드는 이들이다.
수입 밀가루로 후다닥 빵을 만드는 세상에서 모자는 ‘느린 이’가 맞다.
손 빠른 시인이 어린 왕자의 느림을 받아들인 세월이 스쳐갔다.
박상옥 시인은 그런 사람이다.
(박상옥 시인. 사진=문학뉴스 DB)
모자가 함께 굽는 빵 속에 생의 철학이 들어있다.
그녀는 빵과 시를 굽는다.
생이 숨 가쁘고 힘겹다면 『밀밭의 어린 왕자』를 추천한다.
느림의 미학으로 구운 詩를 달달한 사랑과 짭조롬한 눈물 한 방울로 반죽했다
김미옥 diak@munhaknews.com
출처 : 문학뉴스(http://www.munhak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