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감성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우리말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노래와 같다. 그 안에는 우리의 역사, 문화, 그리고 삶이 담겨 있다. 우리말을 사랑하고 가꾸는 것은 단지 말의 형태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누구인지 깨닫고, 후손들에게 우리다움을 전하는 귀한 여정이다. 특히 우리말 속 ‘아름답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외형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깊은 의미를 품고 있다.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눈에 보이는 미적 조화를 연상한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은 이 단어를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단어의 뿌리를 살펴보면, 그 의미는 훨씬 더 깊고 넓다. 15세기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 ‘아답다’라는 옛말에서 ‘아름’은 ‘나’를 뜻했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는 단순히 외적인 미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나다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잊혀져 가는 이 단어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보자. 우리는 종종 남의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정의하고, 그것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바꾸려 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남을 닮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자신의 고유한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데 있었다. 나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빛나게 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길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이를 외적인 것에서 찾으려 한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목소리.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것이다. 각자에게 아름다움의 형태는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끝없는 도전이, 다른 이에게는 소소한 일상 속 기쁨을 나누는 행위가 아름다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남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빛과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아름다움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우리는 때로 그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이 정해놓은 틀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각자가 지닌 고유함과 다름이야말로 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다.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가꿀 때 우리는 비로소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아름다움은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피어난다. 자신만의 빛을 발견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세상이 정한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빛나는 가치를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고 성장한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경험을 쌓으면서 우리는 더 깊은 아름다움을 만들어간다. 이는 단순히 외적인 매력에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기준으로 스스로를 빚어가는 여정,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우리말 속 ‘아름답다’는 단순한 단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철학과 그들이 추구했던 가치관을 담고 있다. 그들에게 아름다움이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었다. 나의 고유한 빛을 사랑하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비추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이었다.
이제 우리도 우리말의 본래 의미를 되새기며, 나다움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말을 가꾸는 것은 단지 언어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고유한 가치를 물려주는 일이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데 있다. 우리 모두가 나다운 삶을 가꾸며 자신만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말은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을 담은 소중한 자산이다. 아름다움의 본질을 되새기며, 우리말 속에 담긴 가치를 이해하고 가꿀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함께, 나만의 고유한 빛을 발견하는 삶을 살아가자.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우리말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귀중한 깨달음이다.
[정성현 세종국어문화원 인문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