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의 신기한 여행』 30여 개 언어로 번역
2024년은 한국문학사에 영원히 기록으로 남을 해다.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쾌거를 달성함으로써 한국도 수상자 배출 국가로 꼽히게 됐다. 노벨문학상은 1895년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의 유언으로 제정된 다섯 가지 노벨상 중 하나로 스웨덴 한림원이 문학 분야에서 탁월한 공헌을 한 작가들에게 1901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해 2024년까지 117차례에 걸쳐 12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중 여성은 18명으로 노벨평화상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그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성 작가들을 다시 살펴본다. [편집자]
[노벨문학상 수상 여성 작가 다시 보기]
(1) 1909년 스웨덴 셀마 라겔뢰프
개구쟁이 닐스가 엄지손가락만큼 작아진 뒤 거위를 타고 스웨덴 마을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신나는 여행을 한다. 아이들은 그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우고 성장해간다. 세계 명작 동화로 꼽히는 책 『닐스의 신기한 여행』은 스웨덴 여성 작가 셀마 라겔뢰프(Selma Lagerlöf, 1858~1940)의 작품이다. 전국교사협회로부터 어린이를 위한 지리 독본을 의뢰받아 조국인 스웨덴의 자연, 풍속, 역사, 지리 등을 알려 주기 위해 1906년에 쓴 것이다. 30여 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라겔뢰프는 1909년 이 책으로 여성 작가이자 스웨덴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아울러 아동문학으로 받은 첫 작가이기도 하다.
(셀마 라겔뢰프. 사진=위키피디아)
1858년 스웨덴 베름란드주 모르바카(Mårbacka)에서 태어난 라겔뢰프는 집안이 부유해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어릴 때 한동안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집에서 가정교사를 두고 공부했다. 할머니에게서 북유럽 전설, 민화, 동화를 들으며 자랐고, 조용한 성격으로 책 읽기를 좋아했다.
1882년부터 1885년까지 스톡홀름의 왕립고등교육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뒤 1895년까지 란스크로나에 있는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교사로 일하면서 1891년 첫 소설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를 집필했다. 당시 잡지 이둔(Idun)에서 주관하는 문학 대회에서 첫째 장을 연재한 이후 우승을 하며 책 출판권까지 얻어냄으로써 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이 작품은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서 벗어난 생생한 상상력을 특징으로 하며 1890년대 스웨덴 낭만주의 부흥운동에 기여했다.
교직을 그만둔 다음에는 자선가 프레드리카 림넬의 재정 지원을 받음으로써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고, 정부로부터 여행 장학금을 받아 이탈리아를 방문한 뒤 시칠리아에 관한 사회주의 소설인 『반그리스도의 기적』(1897)과 『지주 이야기』 등을 발표했다. 또한 1900년 예루살렘 내 미국인 거주지역을 방문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한 『예루살렘』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닐스의 신기한 여행』표지)
그러나 라겔뢰프의 작품들은 대부분 스웨덴 베름란드주에 있는 고향 지역의 민담, 전설,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어 ‘스웨덴 어머니들의 가장 순수한 특징’을 담고 있다고 여겨졌고,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고상한 이상주의, 생생한 상상력, 그리고 영적 인식을 특징으로 한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1894년에 라겔뢰프는 스웨덴 작가 소피 엘칸을 만나 친구이자 동료로서 남다른 관계를 맺었으며, 1897년에는 문학적 조수이자 친구가 된 발보르 올란더를 만났다. 그러나 올란더에 대한 엘칸의 질투로 세 사람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혔다. 당시 스웨덴에서는 여성 간 동성애 관계가 금기였고 불법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공개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밝힌 적은 없었다. 교사였던 올란더가 스웨덴의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라겔뢰프도 1911년 6월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 참정권 대회에서 개회사를 했고, 1919년 5월 여성 참정권이 부여된 후 스웨덴 참정권 운동의 승리 파티에서도 연설했다.
1919년에 라겔뢰프는 모든 작품의 영화 판권을 스웨덴 영화 극장에 매각함에 따라 여러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예루살렘』은 1996년에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은 동명의 영화(빌 어거스트 감독)로 제작됐으며, 예루살렘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기기도 했다.
1904년 스웨덴 아카데미는 라겔뢰프에게 금메달을 수여했고, 1914년에는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했다. 노벨문학상에 이어 아카데미 회원 자격도 여성 최초로 받은 것이었다. 1991년에는 첫 20크로나 지폐가 발행되면서 스웨덴 지폐에 얼굴이 실린 최초의 여성이 되기도 했다.
라겔뢰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 소련과 싸우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노벨상 메달과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받은 금메달을 핀란드 정부에 보냈다. 핀란드 정부는 크게 감동해 필요한 자금은 다른 방법으로 모금하고 메달은 다시 돌려주었다.
라겔뢰프는 아버지가 술에 빠져 팔아버렸던 모르바카 저택의 영지를 노벨상 상금으로 다시 산 뒤 그곳에 정착해 살다가 1940년에 숨을 거두었다.
남미리 기자 nib503@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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