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직접 읽어보는’ 적극적인 행위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는 질릴 만큼 많은 책에 관한 정보에 둘러싸여 있기에 ‘저 책이라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누구에게나 몇 권 정도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책‘에 대한’ 지식을 어느새 ‘실제로 읽었다’는 경험과 슬쩍 바꾸고, 그 책을 읽기보다 ‘그에 관한 지식’을 손쉽게 접하는 것으로 얼버무리고 있는 건 아닐까. 때로는 발췌한 부분만 읽고도 전체를 읽은 듯한 느낌에 정작 ‘책’은 소홀히 내버려두기도 한다. 상대를 직접 알기 전에는 연애가 시작되지 않는 것처럼 책도 우선 그 자체를 읽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작가의 말’ 7~8쪽)

<소금 1톤의 독서>

스가 아쓰코(須賀敦子) 지음. 김아름 옮김.

에쎄. 2020년 3월.

유럽과 일본이라는 두 공간을 살아낸 1세대 코즈모폴리턴 스가 아쓰코가 읽은 책들에 관한 기록을 담은 책으로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도 있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도 있다. 책과 작가에 대한 정보, 대강의 줄거리, 그에 대한 감상이라는 서평적 요소에 스가 아쓰코 자신의 인생 경험과 철학이라는 에세이적 요소가 함께 담겨 있다.

많은 문학가, 평론가, 편집자가 ‘아름다운 문장가’로 기억하는 스가 아쓰코는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본 최고의 에세이스트로 손꼽히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놓지 않았고, 학창 시절은 물론이고 엄혹한 전쟁 시기에도 항상 책과 함께했다. 늘 읽고, 쓰고, 이야기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곁에는 책이 있었고, 이제 그녀의 글은 한 권의 책이 되어 우리를 위로한다.

스가 아쓰코(1929~1998)

일본 효고현에서 태어나 세이신 여자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게이오대학 대학원 사회학과에 진학했으나 중퇴하고 2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 NHK 국제국 프랑스어반에서 일을 하다가 다시 1958년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떠나, 1960년 밀라노에서 동료들과 함께 코르시아 서점을 운영하던 주세페 리카를 만나 결혼했다. 이후 밀라노에 정착해 근대 일본문학 작품을 이탈리아어로 옮기는 일에 주력했으나 1967년 남편이 급작스레 병사하자 이탈리아 생활을 정리하고 1971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 게이오대학과 조치대학, 교토대학, 도쿄대학 등에서 이탈리아 문학 등을 가르치고 엠마우스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이탈로 칼비노, 안토니오 타부키, 움베르토 사바 등의 작품을 일본어로 옮겼고, 1989년 조치대학 비교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만초니가의 사람들』 번역으로 피코 델라미란돌라 상을 수상했다.

1985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해 에세이 작품을 여러 권 발표했다. 1998년 예순아홉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2000년 가와데쇼보신샤에서 『스가 아쓰코 전집』(전 8권)이 간행됐다.

남미리 기자 nib503@munhaknews.com

출처 : 문학뉴스(http://www.munha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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